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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탁기에 관한 원초적 분노

by 장상🐳 2020. 6. 30.

 

Roland Topor, 1976

 

 

 

세탁기에 관한 원초적 분노

김수빈

 

 

 

 

  제기랄.

 

  밤 10시에 나체 차림, 팬티 한 장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물을 잔뜩 빨아들여 질퍽한 빨래 더미를 바닥에 쌓아두고, 하나씩 건져 올려 손수 물을 짜내는 인간을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내가 목격하게 될 줄 몰랐다. 이 손 바닥만한 원룸 자취방에 물은 흥건하고, 화장실에 있는 전면 거울에서 내 벌거벗은 몸을 마주하며, 세탁기를 나둔 채 하나하나 물을 짜내는 초라한 몰골이 내 꼴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 망할 세탁기. 이 망할 701호. 이 망할 코딱지만 한 원룸. 망할 자취. 망할 서울.

 

  내 계획은 완벽했다. 53분의 긴 세탁과정이 끝나면 건조대에 차곡차곡 여백 없이 빨래를 걸어놓고, 내일 눈 뜨면 뽀송하게 말라 있을 것을 기대하며 창문도 살짝 열어놓으려 했다. 무게 감지 – 세탁 – 헹굼 - 탈수의 4단계를 세탁기가 수행할 때, 나는 영어 공부 마무리 – 침구 정리 – 빨래 널기 – 취침의 4단계를 함께 밟아갈 생각이었단 말이다. 헹굼까지의 단계를 가뿐히 끝낸 세탁기가, 탈수로 끝내 넘어가지 못하고 자취방에서 듣지 못했던 경고음을 내질렀다. 세탁기 네가 벌써 포기하면 안 되지 않을까, 그것도 빨래 더미들에 물을 잔뜩 먹여놓고? 몇 번을 다시 누르며 시도했지만 결국 그는 끝끝내 내 짜증이 섞인 탈수 시작 버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 째’ 라고 말하는 듯한, 죽은 척하는 세탁기 앞에서 나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손수 팔을 걷어 (팔 부분을 걷어낼 옷도 입고 있지 않지만) 직접 스스로 세탁의 4번째 단계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왜 나체로 세탁기의 뒷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냐 하면, 나는 아마도 ‘이왕 할 거 한 번에 몰아서 해치워버리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21세기의 건장한 청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보통 가지고 있던 속옷이 다 떨어질 때까지 세탁물을 놓아두었다가, 한 번의 전원 버튼에 다 빨아버린다. 빨래하기 귀찮아서, 라는 명목이 크다. 아마 그 안에는 세탁 한 번의 전기세와 빨래 세제, 섬유 유연제의 가격을 본능적으로 따지고 보는, 늘 궁핍하지만 우리 집에서 돈은 가장 많이 쓰는 대학생 자취생의 계산적인 태도 역시 들어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입고 있던 옷과 속옷까지 죄다 한꺼번에 넣고 빨아버린 것이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말라 있을 텐데. 나 혼자 있는 원룸에서 속옷 없이 잠옷도 없이 잠시 자연인 상태로 있는 것도 안 될 건 없으니까. ‘머피의 법칙’의 머피가 감탄하며 이제부터 내 이름을 붙이는 것을 허락해줄 것처럼, 딱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세탁기가 고장이 난 거다. 나 혼자 있는 원룸에서 옷을 입은 채 물을 짜든 옷을 벗은 채 물을 짜든 큰 상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사방에 거울이 둘러싸인 화장실에서 혼자 그러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스스로가 그렇게 처량하고 비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왕 해야 할 거, 신나게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휴대폰에서 음악 어플을 켰다. 이렇게 기가 막히고 허탈한 상황에서는 신나는 아이돌 노래를 들어야지,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뒤지다가 최근에 컴백한 여자아이돌 노래를 틀었다. 휴대폰을 화장실 선반에 올려놓았다가, 방음도 잘 안 되는 원룸의, 방음이 절대 되지 않는 화장실에서 밤 10시에 음악을 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음악이 시작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시끄러운 비트만 흐르고 사람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헐레벌떡 노래를 껐다. 내 집인데 음악도 못 튼다. 아래층과 위층 사이를 나누는 것이 얇디얇은 합판일 뿐인 부실한 원룸에 사는 현대인이 지켜야하는 매너인 건 당연한데,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601호나 801호 세탁기는 건실할 것 아닌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좁은 원룸에서 함께 버텨야할 전우를 잃어버린 쓸쓸한 밤에, 아이돌 음악 트는 것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 사항 아닐까? 하지만 막상 누군가 밤 10시에 항의한답시고 문을 쾅쾅 두드리면 그에 맞서 응대할 용기가 없는 찌질한 나는, 조용히 이어폰을 꼽고 열심히 빨래 하나하나 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물을 잔뜩 먹은 수건이 얼마나 무거운지, 세탁기를 고장 낸 사람이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601호, 801호는 절대 모를 거야. 수건을 한 세 개쯤 짜내고 나니까 팔이 얼얼하다. 다음 빨래를 집어드는 데 손이 막 떨린다. 힘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세탁기에게 더 화낼 것도 남아있지 않다. 다 내가 잘못했지, 집을 한동안 비운 내가 잘못한 거지. 내가 한꺼번에 세탁물을 그동안 너무 많이 집어넣었던 거야. 옷 소재 별로 구분해서 몇 차례 돌렸어야 했는데, 그게 귀찮고 아까워서 안 한 내 잘못이지. 어쩌면 내가 너무 저렴한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쓰고 있어서 그런 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아직 물을 다 짜내지 않은 세탁물을 한 가득 쌓아둔 채로, 세탁기 수리비용을 집 주인에게 간절하고도 예의바르게 청구하는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원룸에 들어와 산 지 1년이 지나가는 세입자가 갑자기 [1년 동안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갑자기 망가졌네요. 세도 내 주시는 분이시면 돈도 많으실 텐데, 거 수리비용 좀 대주시죠.] 라고 연락을 하면 얼마나 기가 찰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양심 있는 사람이지만,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돈을 충분히 많이 쓰게 되는 자취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있는 양심 없는 눈치까지 다 털털 털어내어, 이사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집주인 연락처를 누르고 꾹꾹 문자를 누른다.

 

  [안녕하세요~ 000건물 ###호 살고 있는 김수빈입니다. 다름 아니라, 원룸 옵션이었던 세탁기가 망가져서 수리 기사님을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세탁기가 탈수를 못하는데, 인터넷 찾아보니까 무게 감지하는 센서가 닳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ㅎㅎ.

  원룸 옵션 가구에 이상이 있어서 수리할 예정이라는 것 알려드리는 김에, 혹시나 집 주인 분께서 수리비용 보태줄 수 있으신지 해서 여쭤봅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세요!]

 

  문자를 다 보내고 나서야 밤 11시가 다 되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중년의 나이인 아저씨에게는 취침시간일 수 도 있을뿐더러, 오늘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좋은 하루 되라는 인사말을 붙였다는 것이 꽤나 창피했다. 이 정도면 나라도 수리비용 주려다가 말겠다. 망했다, 망했어. 나의 이런 절망감은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도착한 답장으로 인해 꽤 극적으로 바뀐다.

 

  [네...그렇군요. 그럼..제가 반 부담 해드릴게요 계좌 보내주셔요...

  그리고 사용 시 잘 조심하여 부탁드립니다~^^ 그밖에 불변한 부분들 있으신지요?]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집 주인이 있다니. 그 밖의 ‘불변’한 부분들이라는 표현은(아마 불편한 부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세탁기 수리비용을 청구하는 세입자가 듣기에 너무 과분한 말이었다. 나는 이 사회의 빈부 격차와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완벽히 구현해내는 집 주인을 목격하고야 만 것이다. 내일 아침 되자마자 당장 수리 기사를 불려야지. 세탁기 너는 이제 푹 자도 된단다. 내일 의사선생님이 오신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화장실로 가, 씩씩하고 끈기 있게 남아있는 세탁물들을 힘껏 짜낸다. 흥건하게 젖어있는 옷가지들을 배배 꼴 때마다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지만, 더 이상 힘들지 않다. 하나씩 하나씩 물을 짜낼 때마다 오묘한 성취감도 느껴진다. 직접 세탁 세제를 손에 묻혀 손빨래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탁 다 된 옷가지들에서 물 짜내는 것만 하면 되니 크게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 수건에서 물을 짜내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난다. 분명 세탁기에 대한 분노였는데, 집주인의 여유 때문에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대체 집주인은 집이 얼마나, 돈이 얼마나 있는 거야. 평생 갖지 못할 액수를 헤아려보았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내 세탁기 수리비가 집주인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온 힘을 다하여 마지막 수건을 힘껏 짜냈다.

  빨래 소동이 다 끝나고, 그만 자려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홀가분한 마음과는 달리,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영 잠자리가 불편하다. 1년밖에 쓰지 않은 매트리스가 꽤 많이 꺼진 모양이다. 편한 자세를 찾느라 계속 뒤척거린다. 빨리 자야하는데, 자고 싶은데 이 빌어먹을 매트리스는 또 등이 배기게, 다리는 저리게 만든다. 그래서 잠시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본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손끝 발끝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처럼 가만히. 옆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서는 물 냄새와 섬유 유연제 향기가 섞인 이상한 냄새가 폴폴 나고 있고, 전원 버튼이 꺼진 세탁기는 죽은 듯이 조용히 늘 있던 자리에 있고, 이 싸구려 매트리스는 내 잠을 방해하고 있고.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잡생각을 멈추고, 꿈도 없는 깊고 묵직한 잠에 미치도록 들고 싶다. 빨래를 짜 내는 육체노동도 있었고, 세탁기에게 온갖 욕을 하느라 감정 소모도 꽤나 힘들어서 아주 피곤한 상태다.

  나는 왜 그렇게 세탁기에 분노했나? 세탁기가 제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내가 직접 소매를 걷고(나체 상태라 걷을 소매도 없지만) 노동을 해야 해서. 고장 증세를 인터넷에 쳐보니 1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든다고 그러기에, 수리 기사 예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십 번 고민을 하게 만들어서. 이보다 더 초라할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의 자비에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지며 평온을 찾는 내 모습은 더욱 처량하다. 내 감정은 꽤 원초적인 무엇이었다. 갖지 못한 것에서 도출되는 분노는 마치 불이 붙은 산처럼 계속해서 그 크기가 증폭된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나에겐 불구덩이가 되며, 나는 소화기도 물이 들어있는 양동이도 없이 발만 동동 구른다. 나는 왜 내 마음의 평화를 내가 가지지 못한 자본에서 찾는가.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를 욕망하는 마음이 없고, 욕심내어 쟁취하려는 자세도 없으며, 심지어는 풍족한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않으면서 베풀어줄 누군가만을 기다린다. 그래서 내 분노는 세탁기를 향한, 세탁기에서 시작된 일차원적인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내 것도 아닌 세탁기를 고장 내고 970만 인구의 서울에 분노한다. 놀랍게도 마음의 안정은 세탁기의 진짜 주인으로부터 꽤 일찍,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온다. 습한 방에서 말린 빨래처럼, 이렇게 꿉꿉하고 거북할 수가 없다.

 


 

김수빈 | 안녕하세요, 김수빈입니다. 제 소개는 소설 ‘소화의 과정’에서 이미 드렸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혹시 제 소개를 아직 읽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소화의 과정’도 한 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수필 ‘세탁기에 대한 원초적 분노’는 그 제목에서 느끼실 수 있듯, 세탁기에게 굉장한 분노와 짜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빠르게 창작한 글입니다. 때문에 글에 과하고 과격한 표현이 종종 있는데, 재미있게 읽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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