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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짓말 탐지기

by 장상🐳 2020. 6. 30.

 

 

거짓말 탐지기

 

장상

 

 

  그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연히 매일이 불안했고 그만큼 매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기찼다.

 

  그들은 매일 머리채라도 잡혔다 풀려난 것처럼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채 매일 밤늦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스트레스성 장염을 자주 앓았던 탓에, 살이 쪄서 걱정이라는 다른 고3들과는 다르게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어른들은 마치 성전에 출전할 기사들을 보는 양 그들을 대접하고 볼때마다 안쓰러워 혀를 찼다. 한번은 그들 중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그를 보더니 “학생, 여기 앉아요. 고생도 많지!” 하면서 자리를 양보해줄 정도였다. 그는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자리에 대신 앉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예의 바르게 고맙지만 곧 내리니 괜찮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어른들은 그들이 내년에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떨어지게 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챙겨줘서 부족함 없이 재수생활을 하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수능은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미미한 통과의례에 불과할 것이지만, 당장 보기에는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 돼지고기 등급 찍듯 낙인을 찍을 대학을 결정지을 시험이기에 어른들은 수능을 앞둔 두 사람을 몹시 걱정했다.

 

  그러나 정작 그 관심의 당사자인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니, 너무 많은 생각을 한 탓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모의고사 성적은 들쭉날쭉했고, 국어와 수학을 잡았다 싶으면 사회탐구가, 사회탐구를 잡았다 싶으면 국어와 수학이 말썽을 일으켰다. 내신 공부를 병행하기도 빠듯했고, 자기소개서만 보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공부만 해서는 안 되었고 매일 불안감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피곤하거나 속이 아플 때 먹을 약을 챙기기까지 해야 했다. 앞날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과 동시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이 바위를 향해 서서히 돌진해 가는 달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눈물이 핑 돌아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맑아졌다. 별것도 아닌 말을 듣고 온종일 깔깔대거나 서로의 칫솔을 교실 한구석에 숨겨 놓고는 그걸 찾아 헤매는 친구의 꼴을 보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문제 푸는 기계가 되기를 택했고, 그 결과 아주 홀가분해졌다. 바쁜 샐러리맨의 삶을 내팽개치고 산속에 들어와서 사니 행복하다며 예수님 같은 차림으로 인터뷰를 하는 텔레비전 속 남자들처럼 말이다. 좋게 말하자면 멘탈이 단단해진 것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정신줄을 놔 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지낸 지 한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두 사람은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다. 고3 학생들 대부분은 학원에 갔기 때문에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듣는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그들은 교사가 오기에 30분 앞서 석식을 먹고는 교실을 찾아갔다. 6월 모의고사가 코앞이라 구역질이 날 정도로 공부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들은 교사가 오기 전까지 공부를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교실에 있는 물건들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낮에는 원어민 독일어 수업을 하는 교실이었기 때문에 교실에는 독일어 교재와 보드게임 몇 가지가 있었다. 그들은 벽에 걸린 이미 졸업한 선배들을 바라보며 이 언니는 무슨무슨 전형으로 무슨무슨 대학에 갔다던데 정말 부럽다, 이 언니는 정시로도 만점을 받고 수시로도 전교 1등이더니 역시나 어느어느 대학 어느어느 과에 합격하더라, 이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장난감 상자를 뒤져서 거짓말 탐지기를 찾아냈다. 예능방송 같은 곳에 나오는 손을 묶고 버튼을 누르면 확률에 따라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장난감이었다. 원래도 장난기 많던 그들은 호기심이 동해 그걸 가지고 놀기로 했다.

 

  천성이 개구진 사람들인데도 그들은 온종일 공부만 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다소 소심해져 있었다. 그때까지 거짓말탐지기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은 그 장난감이 어느 정도의 전기충격을 주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고문도구가 아니니 사람을 죽일 정도로 아프지는 않겠지만, 중국산 불량품 장난감에 재수 없게 걸려서 내일 아침 뉴스에 ‘고등학교 3학년생, 불량 거짓말탐지기에 감전되어 사망…’안타까운 죽음’’이라는 헤드라인이 실리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특히 한 사람은 엄살을 잘 떠는 성격이라 남들은 거의 알아보지도 못할 상처를 갖고는 종이에 베였다며 반창고를 붙이고 호들갑을 떠는 부류였다. 몸에 고통이 가해지는 것은 조금이라도 견딜 수 없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네가 먼저 해보라며 순서를 미루었다.

 

  마침내 한 사람이 결단력을 발휘해 다른 한 사람의 손을 강제로 거짓말 탐지기 위에 올려놓았다. 덫에 걸린 사람이 몸부림을 치자 그는 친구가 손을 빼지 못하게 하려고 잽싸게 장난감의 끈으로 친구의 손을 감싼 뒤 꽉 붙잡았다. 붙잡힌 사람은 체념했다. 어차피 결국은 하게 될 일이었고, 공부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뭐를 먼저 질문할래?” 손을 꽉 쥐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

 

  “음……어……,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와 남자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남자들을 볼 일이 없었다.

 

손을 쥐고 있던 친구가 장난감의 버튼을 눌렀다. 영화 <죠스>에 나오는 음악과 비슷한 긴장감 넘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붙잡혀 있던 사람이 움찔 하면서 부르르 떨었다.

 

  “와, 맞췄어!” 두 사람은 박장대소했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은 부리나케 자신의 손을 떼더니 친구의 손을 기계 위에 얹었다. 친구는 “나는 6월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라고 외쳤고 (너무 흥분한 탓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기가 올랐다.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도 켜지 않고 노는 데 열중한 탓에 둘은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논술 교사를 맞이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한 사람의 신발끈이 풀렸다. 친구는 그를 기다려 주었다.

 

  “아까 그 거짓말 탐지기 말이야,” 신발끈을 묶으면서 말했다.

 

  “어.”

 

  “되게 짜릿하지 않았어? 내 말은, 전기 말고 그냥 그걸 하는 상황 자체가 말이야.”

 

  “아 진짜 재밌었어. 그거 전기도 은근히 저릿하고 간질거리는 게 마사지 받는 것 같고 좋더라.”

 

  “이 미친놈.”

 

  그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너무 웃어댄 탓에 목소리가 쉬어 걸걸했다.

 

  “또 하고 싶다.”

 


 

  그 무렵에 이미 다른 고3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기벽을 가지고 있었다. 보라색 펜만 모으는 아이, 감독관 선생님 몰래 독서실에서 나와 불 다 꺼진 교실에서 야자하는 아이, 머리에 헬멧 모양의 베개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아이, 화려한 양말을 모으면서 뽐내는 아이……. 그리고 두 사람은 거짓말 탐지기의 전기충격에 미쳐 있었다. 그들 중 유독 비유하기를 즐겨 하던 사람은 그 전기충격이 ‘어릴 적 수족관에 가면 있던 닥터피쉬가 각질을 뜯어먹는 듯한 느낌과 같다’면서 하루라도 전기충격을 받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고 말했다. 이 전기충격에 맛들린 두 사람을 비롯해 다른 기벽에 빠진 학생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공포 영화의 미치광이 소굴을 방불케 했지만, 다들 자신이 처한 갑갑한 상황을 잊으려 애를 쓰다 보니 그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여하튼 처음에 그들은 논술 수업이 있는 목요일 저녁에만 전기충격을 받았다. 규칙적인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다른 날에도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최대한 더 오랫동안 전기충격을 받으려고 목요일만 되면 석식을 허겁지겁 먹고는 뛰어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급하게 밥을 먹은 탓에 한 사람은 목요일 저녁마다 복통을 호소하며 소화제를 먹어야 했고, 논술 교사는 이 말수 적고 얌전한 학생들이 어째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미친놈처럼 낄낄거리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가 다른 한 사람이 그들이 그동안 놓치고 있던 사실을 깨닫고는 심심할 때마다 논술 교실에 올라가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야간자율학습 2교시 쉬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야자 3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기 전까지 헐레벌떡 3층으로 올라가서 실컷 자신들의 손을 지지며 놀았다. 나중에는 오후 수업 쉬는 시간에도 그러고 놀았고, 한번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어차피 이걸 쓰는 인간도 없는 듯하고 학교에 등록금도 많이 갖다 바치는데 이깟 물건 하나 없어지는 게 대수겠냐며 거짓말 탐지기를 훔칠 궁리까지 하기도 했다.

 


 

  그들이 거짓말 탐지기 중독자가 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여름방학 논술 특강을 신청한 두 사람은 이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에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예정이었다. 특강이 열리기 전까지 독서실을 제외한 다른 교실들은 모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환호했다. 이제 다시 그 교실이 열려 그동안 참아온 전기충격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교사가 올 때까지 한참 시간이 남았는데도 교실로 뛰어가 거짓말 탐지기를 꺼냈다. 한 사람이 탐지기 위에 손을 얹자 다른 한 사람이 물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까?”

 

  “…….”

 

  그들은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두 달 동안 ‘나는 외동이다!’, ‘나는 핸드폰이 있다!’, ‘나는 미술 선생님을 증오한다!’ 따위의 쓸모없는 말들을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너무 많이 쏟아내서 이제는 소재가 고갈된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튼을 눌러도 그만이었지만, 그들은 왠지 무언가를 이 장난감 앞에서 증명하고 또 선언하고 싶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손을 얹고 있었던 사람은 그의 친구보다 우울한 기질이 좀 더 강했다. 그가 불쑥 말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정말로 그걸 묻고 싶은지 본인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얼결에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전기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또다시 미친 사람들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넌 쓸모없는 인간이래!” “여기 인간 쓰레기 하나 추가요!” 이 따위 실없는 소리를 해 대면서.

 

  “나는 최고 존엄한 갑부다!”

 

  이번에는 찌릿했다. 그들은 또다시 웃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또다시 찌릿했다. 그들은 우리가 역시 불행한 것이 틀림없었다며 웃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굉장히 공허했다. 점괘가 유사과학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나쁘게 나오면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과 같은 심리였다.

 

  “음, 나는 공부를 못 한다!”

 

  잠잠했다.

 

  “나는 올해 대학에 합격할 것이다?”

 

  약간 주눅이 들은 사람이 묻자 전기가 찌릿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웃었지만 방금 전처럼 짐승 소리를 내며 웃지는 않았다. 재수에 옴 붙지 않게 묻지 말았어야 할 것을 얼결에 툭 내뱉은 당사자는 뒤에서 귀신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둘 다 그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끝내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까짓 거 그냥 다 가짜인 걸’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런 거 뭐 하러 묻고 그래. 이렇게 얼토당토않고 극단적인 걸 물어야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이 애써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고 하면서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갑자기 아주 슬퍼졌다. 격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기분을 잡쳤다. 이제 더 물을 것도 없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여기에 열중할 시간에 공부를 했더라면 뭔가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그들은 더욱 불행해졌다.

 

  “우리 조금 있으면 수능까지 100일밖에 안 남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람?”

 

  “그러게. 공부나 하자.”

 

  먼저 그만할 것을 제안한 사람은 거짓말 탐지기의 전원을 끈 뒤 그것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해서 상자에 넣었다. 그들은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서 참고서를 펴고 스탑워치를 켰다. 15분 뒤에 도착한 논술 교사는 두 사람이 평소보다 유독 어두워 보이고 말도 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장상 |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 이상의 팬이 되면서 <월간 권태>를 처음으로 구상했습니다. 덕업일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그걸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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