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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가정의 방문 (하)

by 장상🐳 2020. 7. 16.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4.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에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우습게도 추락이다. 추락이라기보다는 배신에 더 가까울 테지만 끝끝내 난 추락이라고 칭하기를 고집했다. 끔찍하게 추한 태도였지만 모든 배신자의 말로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염수진의 집에서 돌아오고 몇 주 후, 방학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수업을 듣고, 복습을 하고, 연습문제를 풀고, 과제를 냈다. 염수진 역시 일상으로 돌아갔으나 그 때부터의 일상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염수진은 상경대학 공동대표가 되었다. 2학년 때는 공동 과대표를, 3학년 때에는 단과대 공동대표를 단 것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상대 후보들이 상경대 내에서 꽤나 인기몰이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염수진의 팀은 압승을 이루어냈고, 1년의 과대 생활 이후 바로 단대 공동대표가 된 사람은 상경대학 역사상 염수진이 처음이었다. 물론 저 말들은 염수진의 앞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뒤에서 주로 나왔던 말들이었다. 제대 후 복학한 선배들은 하루 종일 과방을 들락날락거리면서 가십거리나 만들고 후배들에게 집적대기 일쑤였는데, 그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하던 말들은 보통 저런 류의 말들이었다. 그들은 염수진을 보고 여자애가 독하다고, 저거 분명히 감투에 미친년일 것이라고, 정치경력 만들겠다고 나대는 것이라며 괜히 헐뜯곤 했다. 물론 그들은 어디를 봐도 미래가 없는, 갖고 있는 것은 학벌 밖에 없는 쓰레기들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입담에는 모두가 설설 기었다.

 

  우리는 전만큼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염수진에게는 언제나 일이 많았는데, 그건 본인의 책임감은 너무 무거운 데 비해서 주변인들의 책임감이 가볍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출마한 공동대표도, 염수진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줄 것처럼 말하던 학생회 사람들도 조금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염수진을 찾았다. 남을 탓하는 성격도 아니고,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을 내버려둘 줄도 몰랐던 염수진은 사실상 학생회 일을 혼자서 지휘하고, 검수하고, 실행하고 있었다. 모두가 염수진의 능력을 칭송했고, 모두가 염수진을 사랑했다. 염수진은 그 때 자신 능력의 정점을 찍고 있었고, 아마 추락에 대해서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꿈에 염수진이 나타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난 달려가는 중인데도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기차의 창틀에 늘 그랬듯이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사람들이 기차 근처를 맴돌다 사라졌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미처 풀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게임 이론 문제였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솔루션을 그려 보던 나는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에 위를 올라다보았다. 열기구였다. 난 자세를 고쳐 앉고 머릿속을 뒤덮은 게임 나무들을 지워버렸다. 머릿속을 거미줄처럼 옭아맨 나뭇가지를 쳐 내자 열기구의 바구니에 탄 사람이 보였다. 염수진이었다. 염수진은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도 내 꿈에서 위로 떠오른 적 없었다.

 

  염수진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난 그 표정을 알 수 있었다. 그 서산의 바닷가에서 지었던 그 이유모를 웃음이다. 나는 한참을 염수진을 올려다보다가 기차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나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대로 꿈에서 튕겨져 나왔다. 벌떡 일어나 앉은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빠르게 뛰는 심장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렸고, 결국 진정제를 삼키고서야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꿈은 어차피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불쾌함을 떨쳐내고자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던 게임 이론 문제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게임 나무들은 연습장에 무성히 가지를 쳤지만 처음으로 느꼈던 놋쇠 문고리의 서늘한 촉감은 오래도록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몇 주 후였다. 나와 염수진은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졸음을 쫓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상경대학 건물에 들어서던 순간, 우리를 반긴 것은 언제 붙었는지도 모를 큰 대자보였다. 염수진은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놓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본인의 이름이 크게 붙어 있는 대자보 앞에 얼어붙었다. 나는 염수진의 얼굴을 조금 바라보다가 대자보를 읽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가면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권, 시위, 직권 남용, 관종과 같은 단어들이 우리를 맴돌았다.

 

  까닭은 이러했다. 몇 주 전 염수진은 늘 그랬듯이 시간을 쪼개서 몇 군데의 시위에 참여했다. 그 중 몇 개는 학생회 깃발을 들고 참여했고, 몇 개는 개인적으로 참여했는데, 우습게도 논란이 된 시위는 개인적으로 참여한 시위였다. 학생회 깃발을 들고 참여한 시위의 경우 다른 학생회들과 합의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참여한 시위의 경우 그러지 않았다. 문제가 된 시위는 여성단체들이 주도한 강제 해고당한 사내 성추행 피해자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한 기자가 찍은 사진에 염수진의 얼굴이 찍혔고, 그 사진은 우연히 익명의 한 학생에게 발견되었다. 그 학생이 누구인지, 평소 염수진에게 악감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학생은 그 사진을 지인들과 공유했고, 그 공유된 사람 중에는 실제로 염수진에게 악감정이 있었던 사람이 끼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권력에 미쳐서 단과대학을 헤집고 다니는 기 센 년인 염수진을 손수 혼쭐내고자 했고, 본인의 지위를 망각하고 ‘감히’ 여성권 시위 따위에 다니는 염수진을 비판하는 글을 거대한 대자보에 인쇄해 붙였다.

 

  저런 글 같은 것 하나도 안 무서워, 봄이야.

 

  염수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염수진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대자보에 대해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무시했다. 염수진은 여느 때와 같이 일하고 공부했다. 염수진이 정말로 무섭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염수진은 조금 지쳐 보였고, 사람들을 대하는 말은 차분하지만 방어적이었다. 어느 날, 강의실 뒤편에서는 누군가 염수진, 걔 너무 예민한 것 같아,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난 고개를 돌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낯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내 눈길을 피했다. 자기가 한 말이 그렇게 부끄럽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염수진은 염수진답게 사는 것이고 그 대자보를 붙인 사람도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남 좋은 일만 하는 염수진이 답답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 일이 아니니까, 싶었다.

 

  염수진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아 했지만 염수진을 대변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았다. 그 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열흘 쯤 지나고 새로운 대자보가 붙었다. 이번에는 염수진을 옹호하면서 첫 번째 대자보를 규탄하는 대자보였고, 붙인 집단은 운동권으로 학내에서 유명한 사회연대 동아리였다. 염수진은 편을 들어달라고 말한 적 없었지만 고작 그들이 붙인 종이 한 장에 그들의 편이 되어버렸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우연히 과방을 지나가다가 염수진이 그 동아리 대표에게 전화해 제발 대자보를 떼 달라고, 자기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들었다.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웅크리고 앉은 염수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나자 난 조용히 자리를 떴다. 대자보는 철거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염수진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염수진은 수업을 자주 빠지곤 했고, 같이 듣는 수업에 들어오더라도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을 떴다. 학생회 활동은 예전처럼 진행되었지만, 염수진은 공식 행사에 얼굴을 거의 비추지 않았다. 염수진에게 늘 묻어가기만 했던 공동대표는 내가 염수진의 행방을 묻자 골치 아프다는 듯이 걔가 일이 좀 있어서, 라고 답했다. 그 뒤에 옹기종기 앉은 여자 동기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공동대표의 표정만 살폈다. 몇몇 남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염수진의 이름을 들먹이며 시시덕대곤 했다. 그 사이에 염수진과 오빠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학생회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학생회 사람들이 염수진을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기로 했다. 나는 염수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염수진은 받지 않았다. 염수진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염수진과 삼 년이나 함께 학교생활을 했으면서 염수진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날 하늘은 우중충했고, 난 늘 그랬듯이, 수업 시작 20분 전에 상경대학 건물에 도착했다. 프린트를 해야겠다, 싶어 들렀던 과방에는 염수진과 학생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분위기에 난 잠시 움찔했지만, 그냥 프린트 하고 가라던 학생회의 말에 구석의 컴퓨터로 갔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별 감정이 없었다. 오직 염수진만이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네 선에서 상황 수습이 안 돼?

 

  공동대표가 말했다. 염수진은 고개를 저었다. 너도 대자보를 붙이던가, 하고 다른 학생회가 말했다. 염수진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잘못한 게 없는데 변명을 꼭 해야 해?

 

  염수진의 말에 공동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 숨을 뱉었다. 네가 지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하고 말한 학생회는 전에 염수진의 이름을 들먹이며 조롱하던 남학생 무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염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수진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더 곤란하지, 지금 상경대 학생회 과격 운동권이냐고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떠드는 줄 알아? 우리도 다 싸잡혀서 여성우월주의자라고 먼지가 되게 까이고 있단 말이야. 지금 학생회 사업 분위기 험악하거든? 네가 입장 표명을 안 하면 피해 보는 건 학생회야, 사과문을 쓰든 입장문을 쓰든 뭐든 써서 당장 붙여, 아니면 차라리 책임을 지고 사퇴해줘, 하며 염수진을 몰아붙였다.

 

  솔직히 그 대자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잖아, 네가 그런 과격한 시위를 나가고 사진 찍혀서 우리가 좋을 게 뭐야? 너한테는 정치경력 만들고 그런 게 필요한지 모르지만 우리까지 엮지 말라고.

 

  공동대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 말에 염수진은, 내가 지금 이걸 정치경력 만들자고 이러는 것 같아? 고작 정치인 돼 보겠다고 이 일 하는 줄 알아? 하며 소리쳤다. 큰 목소리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과방의 문을 슬쩍 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공동대표는 염수진을 비웃더니 일어난 염수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야, 네가 왜 일 하는지 누가 알겠어? 네가 벌인 일 네가 수습해, 아니면 내가 사퇴할 거니까, 하고 과방을 박차고 나갔다. 염수진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사람들이 수군거렸고, 몇은 염수진을 조롱했고, 학생회들은 눈치를 보며 한 명씩 방을 나갔다. 끝난 프린트를 들고 서 있던 나를 보던 한 학생회가 봄아, 가자, 하면서 내 손을 끌고 그 방을 나가려 했다.

 

  봄이야,

 

  염수진이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눈이 마주쳤다. 우리 사이에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그 눈빛에서 나는 그런 말들을 보았다. 어떤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는 사람들이 필요해, 봄이 너는 남의 약점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너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야, 그런 말들이.

 

  정적의 끝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회의 손을 잡고 나갔다. 그건 너의 일이고 너의 문제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진아, 네가 틀렸어, 사람들은 너한테 원하는 것만 취하고 다들 자기 목표를 위해 달아나 버린단다. 다 네 가정이 틀렸기 때문이고, 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고, 네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내가 지금 네 손을 잡지 않는 것도 다 네가 나를 잘못 본 것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녔고 나는 그렇게 군중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자리에 특정된 인물은 염수진 뿐이었고, 나머지는 이름 없는 군중이었다.

 

  봄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내 손을 끌고 나온 학생회가 내 표정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서 진부한 변명들을 했다. 최근에 학생회 관련해서 민원이 얼마나 폭주하는지, 최근 학생회 사업에 학생들이 얼마나 싸늘했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고, 염수진의 독단적인 행동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줬는지. 나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학생회의 손을 뿌리치고 건물을 뛰쳐나왔다. 학교 정문까지 목에서 피 맛이 날 때까지 뛰었다. 네가 문제를 만났을 때 마다 염수진은 스트레스가 없어서 널 도와주었을까, 다른 사람들한테 민원이 들어왔을 때 염수진이 도와준 건 기억해? 필요할 때는 열심히 굴려먹더니 이제 와서 꼬리 자르기야? 하지도 못한 말들을 입 속에서 굴린다. 너네는 지독하게 이기적이야.

 

  정문 앞에서 넘어졌을 때 질주는 멈췄고, 나는 도움을 주려는 손을 뿌리치고 혼자 일어났다. 신발 끈이 풀려 있었고, 나는 신발 끈을 묶고 매듭을 세 번이나 지었다. 그러는 너도 염수진한테 진 빚이 많을 텐데, 그럼 너나 저 애나 다를 게 뭔데? 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다. 너도 지독하게 이기적이야, 이봄. 앞으로도 실컷 염수진 같은 사람들을 등쳐먹고 살려무나. 바지 안에서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콘크리트에 손바닥도 잔뜩 긁혀 있었다.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비치는 것을 보고 나는 우습게도 벌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난 당연한 일을 했는데 벌을 받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지 몰라, 내가 처음부터 틀렸는지도 몰라. 내가 진짜 잘못한지도 몰라. 아까부터 잔뜩 궂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와 함께 염수진도, 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락이었다.

 

 


 

  나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이곳저곳에 묻어놓듯이 기숙사 방에 숨겨둔 수면제를 하나둘씩 찾아낸다. 눈대중으로 약들을 손바닥에 모은다. 평소라면 그런 식으로 잠에 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약을 삼키며 그 이후 결국 염수진이 모든 책임을 졌음을 떠올린다. 염수진은 결국 쓸 이유가 없었던 사과문을 써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염수진은 사퇴하지도, 중도휴학을 하지도 않고 그 학기를 끝까지 다녔다. 그 후 1년간 휴학을 하긴 했지만, 염수진은 모든 학생회 일정을 소화하고 인수인계까지 마친 후 깔끔하게 학교를 떠났다.

 

  추락의 날 나는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진탕 마시고 이안에게 갔고, 학기의 반이 지나간 후였지만 중도휴학을 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내 안부를 물을 사람은 염수진 밖에 없었지만 염수진은 나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방에서 항우울제를 벗 삼아 지냈다. 까닭 모를 죄책감이 나를 휘감고 놓지 않아서 약 없이는 잠에 들 수 없었지만, 약을 먹고 잠에 들면 다시 기관차가 나타날 것이었기 때문에 뜬눈으로 날과 밤을 지새우다 쓰러져 잠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꿈에는 여지없이 기관차 안에 누워 있는 내가 나왔다. 네가 나를 잘못 본 것이다, 너는 나를 믿었지만 난 믿음을 저버렸고 너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겠지만 난 네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들은 다 그런 거다. 다 그런 건데 왜 네 말이 계속 떠오르는 거지. 머릿속에서 말들이 왕왕 울렸다. 지긋지긋한 꿈속에서 염수진의 열기구를 보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버텼지만 결국에는 창문 밖의 하늘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열기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다음 학기에 바로 복학을 했고, 계절학기와 6학기 이수만으로 최우수 졸업을 해 냈다. 아무도 오지 않은 내 졸업식에서 나는 멍청하게도 염수진을 보기를 기대했다. 그날 염수진을 볼 수는 없었고, 나는 타 학교 대학원으로 학교를 도망치듯 떠났다. 그날의 도망은 미지근한 생수와 이런저런 이름의 알약들처럼 미적지근하고 뒷맛이 썼다. 그 후에는 염수진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 가정이 틀렸다는 것은 과거의 잔상처럼 남았지만 그 후의 인생에서 그 가정을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틀린 가정은 폐건물처럼 공고히 남았다. 염수진이 실종됨으로서 내 인생에 다시 나타나기 전 까지는.

 

 

 

 

 

5.

 

  기관차 바닥에 누워 들은 생각은 별 것이 없었다. 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정들뿐이었다. 만약 내가 추락의 날에 염수진의 편을 들었다면? 만약 내가 그 겨울에 서산에 가지 않았더라면? 신입생 시절, 살갑게 다가온 염수진을 밀어냈다면? 아예 그 대학에 가지 않고 부모님이 원했던 대로 재수를 해서 서울대에 갔다면? 내 이름이 계속 이본느였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애초에 내가 원했던 건 뭐였지?

 

  검증할 수조차 없는 가정들에 기대 입 안에서 굴리는 말은 하나뿐이다. 이봄, 너는 망가졌고 고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폐기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 폐기물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을 과거에 기대어 기차에 누워 있는 것이 너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나는 기관차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제 끝이다. 어쩌면 이곳은 지옥인지도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상관이 없었다. 진작 도망칠 걸, 후회까지 들었다.

 

  그때, 나는 일정한 속도로 덜컹거리던 기관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기차는 아주 조금씩 느려지더니, 결국에는 멈춰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나는 하얘진 머릿속을 더듬으며 일어났다. 내가 가정을 회피하고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기관차가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내가 죽어버렸는지도 몰라. 나는 그 때에야 일어나서 허깨비처럼 기관차 안을 헤맸다. 난 전에는 의식하지도 않았던 선반 위의 물건들을 일부러 밀어 떨어뜨리고, 의자를 뒤집고 발로 밟아서 이음새를 망가뜨렸다. 물건을 던져서 창문을 깨고 커튼을 잡아당겨 찢으며 그렇게 공고하던 내 세상이 이런 식으로 끝이 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맨발 밑에서 버석거리며 물건들의 파편이 밟혔지만, 망가진 물건들은 내 발에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깨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에야 내 손은 멈췄다. 이게 끝이기 때문에 기관차가 멈췄고 내 발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휘청거리며 기관차의 맨 앞 칸으로 가서 황망하게 빛나고 있는 에메랄드 씨티를 바라본다. 이젠 에메랄드 씨티가 내가 마지막까지 옭아맨 가정의 탑으로 보였다. 아니, 이 기관차가 내 가정이었을까, 유리를 밟아도 생채기조차 남지 않는 이 몸이 내 가정이었을까. 내가 가정한 게 뭐였지? 무엇을 가정하면 내가 행복해지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내가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앞을 다퉈 멋진 포장지로 나를 휘감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렇다면 부족한 학벌을 딛고라도 교수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날 벌레처럼 보는 식구들, 가정 안의 지독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것인가. 만약 내가 죽었다면, 난 지금 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데 왜 하나도 기쁘지 않은가. 아니면?

 

  왜 염수진이 실종되었다고 했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지? 죄책감, 분노감, 허망함, 자기혐오, 그 시간이 다 지나도록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니, 방에만 박혀 있었던 그 지옥 같던 시간을 기억한다.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 벌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염수진이? 군중이? 아니면 내가? 죄인이 자신에게 죄를 부여할 수 있는가? 아니, 이 상황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것이다, 나도, 군중도,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거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서로를 이용하고 짓밟는 거야. 그럼 난 왜 염수진을 생각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결국에는 죽어버렸지? 대체 뭘 위해서?

 

  나는 피어나는 가정의 먼지에 비명을 지른다.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그 전제를 가지고 푼 문제들을 모두 새로 풀어야 할 텐데.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어린아이 같은 선의를 품은 염수진에게 네 생각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린 건 나였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성공도 승리도 명예도 아닌 염수진의 그 어린아이 같은 선의였다. 처음 마주한 선의였던 염수진이라는 존재에 목말랐고 염수진이 불러 준 이름이 좋았고, 그래서 그 손을 놓은 나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혔다. 그래서 창밖에 머리를 내밀었을 때 저 멀리, 염수진의 열기구가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그 방문을 열었다. 놋쇠 손잡이를 딸깍, 돌리니 힘없이 열린, 가정의 먼지로 가득 찬, 그 매캐한 가정의 방은 더 이상 나를 가둘 수 없었다.

 

 


 

  열기구를 따라가는 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흙과 돌만이 존재했다. 기관차 속의 물건들과 달리 그것들은 내 발에 상처를 입혔다. 뾰족한 돌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외마디 탄성을 뱉었다. 고통은 생의 감각이었다. 점차 내 발에는 생채기가 났지만 오히려 나는 붉은 피가 비치는 상처에 안도했다. 바깥의 날씨는 더웠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염수진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열기구에 의지해 황무지를 걸어갔다. 목이 말랐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어디에도 물은 없었다.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걸어가는 내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생각을 뻗치는 것 밖에 없었다.

 

  이본느, 아가, 이리 오렴.

 

  어머니는 내가 성년이 된 이후 한 번도 날 이본느라 부르지 않았다. 내가 성적을 잘 받고 장학금을 받고 최우수 졸업을 해도 그 이름이 다시 불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 이름에 더 목말랐다. 이본느가 허영심 많은 부모가 멋대로 지은 이상한 이름이고 난 이제 그 이름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닿을 수 없는 이본느를 쫓으며 내 새 이름인 봄을 경멸했다. 이본느라고 불리는 것보다 내 인생에서 즐거운 일은 없었기 때문에.

 

  봄이야 너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야.

 

  이봄, 봄아, 하고 부르던 이름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내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멸칭인 듯 주저하던 호칭이었다. 염수진만은 달랐다. 봄이야, 하고 부르는 염수진의 목소리가 좋았다. 아니, 그 목소리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봄이야 하고 부르는 말 아래 자연히 깔려 있었던 애정이 좋았다. 봄이라는 이름이 듣기 좋다고 느꼈던 건 서산에 갔던 그날 밤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봄이라는 이름이 나쁘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본느가 아니라 봄이로 살아도 되었을지도 몰라.

 

  하염없이 열기구를 올려다본다. 흐른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염수진의 이름을 불렀다. 수진아, 수진아, 나야, 봄이야, 제발 한 번만 내려다 봐 주면 안 되겠니. 수진아. 그리고 무릎이 풀렸고 난 모래밭에 주저앉았다. 땀범벅이 된 무릎에 뜨거운 모래가 달라붙으며 생채기를 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때 한참을 기어오르던 사구 너머에 호수가 보였다. 푸른 호수가 보였다.

 

  나는 네 발로 기어서 호수로 향했다. 팔로 다리를 끌면서, 때로는 데굴데굴 굴러서, 사구를 내려가 호수로 향했다. 호수에 거의 닿았을 때 나는 그저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다. 땀과 눈물이 물과 섞였다. 한참 물을 마시고 나서는 호수에 들어갔다. 물은 미지근하고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물에 잠긴 채 난 고개를 들어 열기구를 찾았다. 열기구는 호수를 지나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여기가 내 종착지였다. 열기구가 이끌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정답.

 

  나는 호수 안에 완전히 잠겨, 호수의 가운데로, 가운데로 걸어 내려갔다. 원래라면 몸이 떠올라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닥에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코가 아가미로 변한 듯 물을 숨 쉬고 내뱉을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호수의 바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 가운데에 모든 것의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핏자국이 선명하던 발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온 몸에 났던 생채기와 일어난 피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유 없이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마치 이끌리듯이, 중심으로, 중심으로 내려갔다. 마침내 중심에 덩그러니 서 있는 방문을 마주할 때 까지.

 

  방문은 기관차의 문을 닮았다. 난 살짝 그 놋쇠 손잡이를 잡아 본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잡이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닿은 부분을 감싸 쥔다. 덩그러니 있는 방문의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난 직감적으로 이 문을 열면 호수가 아닌 다른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저 방문을 열면 아마 깨어날 것이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틀린 것들을 바로잡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정말 모든 문제, 내가 그동안 결정했던 모든 것을 뒤엎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시는 이본느가 되지 못할 것이고, 이봄으로 살아가는 것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호수 속에 물고기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호수는 편안하고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이본느와 이봄의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되겠지. 내가 전에 문제를 좀 잘못 풀었다고 해도 이곳에 남아있는 이상 그 오답들이 큰 문제가 될까. 나는 뒤로 물러나 판판하고 부드러운 호수 바닥에 드러눕는다. 바로 결정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봄이야.

 

  감은 눈 속에 추락의 장면이 재현된다. 마지막으로 염수진의 눈을 보았던 그 순간, 난 학생회의 손을 잡고 나가려 하고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간다. 방문에 귀를 바짝 대고 소리를 듣는다. 방문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방문에 양 손을 댄다. 건너편의 사람도 방문에 손을 대는 것이 느껴진다. 염수진이다. 염수진이 저 너머에 서 있다. 실종되어서 어디를 떠돌고 있을지 모르는 염수진이 저 너머에 있다. 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망설임 없이 놋쇠 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그리고 방문을 환히 열어젖힌다. 열린 방문 너머로 걸어 나간다.

 

 


 

  죽으려고 한 거냐?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흰 병원 천장이었고 다음으로 들린 것은 아버지의 볼멘소리였다. 내 코와 입에는 이런저런 호스들이 꽂혀 있었고, 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아니요.

 

  호스에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난 간신히 말한다. 아버지는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손짓하고 간호사는 내 입과 코에서 호스를 분리해 낸다. 난 물을 토해 내듯 기침한다. 맑은 물이 건조한 손에 떨어진다.

 

  링거 다 맞으면 집으로 가라. 집에서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그렇게만 말하고 병실을 걸어 나간다. 마지막일수도 있는 그 순간까지 나는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존재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건조하게 머릿속을 맴돌고 지나간다. 나는 아버지의 발소리에서 우리 사이에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듣는다.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하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저 공허했다. 텅 빈 방에 들어간 듯이. 나는 얌전히 링거를 맞는다. 병실 한 귀퉁이의 TV를 보니 이안을 찾아갔던 날로부터 4일이나 지나 있다.

 

  내가 챙긴 것도 아닌데 병실에는 내 소지품이 다 있다. 링거를 다 맞고 병원복을 갈아입는다. 4일 전 입었던 바지는 허리가 크고 윗옷은 우스꽝스럽게 벙벙해 꼴이 이상했다. 아쉬운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코트를 걸친 후 가방을 맨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수없이 찍힌 부재중 연락과 메신저를 확인한다. 거의 연구실 사람들에게서 온 연락이다. 초반에는 걱정하는 말들이, 나중에는 나의 부재함에 한껏 짜증을 내는 말들이 찍혀 있다. 나는 픽 웃으며 모든 알림을 지워버린다. 더 중요한 일이 있고 더 먼저 가 보아야 하는 곳이 있다. 비틀대며 병원을 나서서 지하철에 오른다. 고속버스터미널로 갈 생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 속에서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어폰은 꽂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을 듣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지만 무시하고 계속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게임을, 책을 읽기도 하고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난 링거를 꽂았던 손에 붙은 밴드를 살짝 떼어 아래를 본다. 빨간 핏자국이 밴드에 남아 있고 손에는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자리가 선명하다. 찌릿한 통증에 난 밴드를 다시 덮는다.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탄 지 겨우 나흘이 지났지만 매 분 엄습하는 생의 감각은 낯설었다. 나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리는 인파에 섞여 내린다.

 

  가장 빠른 서산행 표를 끊고 선 고속버스터미널은 그 겨울과 닮아있었다. 가방 하나만 덜렁 들고 서 있는 나는 더플 백을 들고 앳된 이방인으로 서 있던 그 겨울의 나와 닮아있었다. 다만 서산에 간다고 염수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만이 그 때와 달랐다.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염수진은, 자기가 가는 길이 어느 길인지 잘 아는 사람이고,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꼭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답한다.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자기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돌아가 잠시 날개를 접고 있는 염수진에게 다가가 수진아, 하고 말을 걸고 싶었다. 그렇다면 네가 늘 그랬듯이 넌 날 봄이야, 하고 불러주겠지. 가장 듣고 싶었던 그 이름을.

 

  버스가 왔고 나는 버스에 올라탄다. 올라타서 그 겨울과는 달리 커튼을 연다. 햇빛이 들어와 눈을 찌푸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밖을 내다본다. 회색 도시를 떠나 버스는 달린다. 흙색 논밭과 희멀건 하늘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나는 어느새 까무룩 잠에 든다. 염수진이 물건을 간수하듯 속에 잔뜩 뒤엉켜 있는 감정을 정돈하고 청소해 제 자리로 돌려보낸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난 아무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감은 눈 속처럼 새까만 무언가가 나를 지킨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나는 수진을 향해 떠났다.

 


전여운 |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제학도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깨달음들을 기록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이야기들을 씁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독자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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