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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어의 작은 세계

by 장상🐳 2020. 5. 19.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The Phi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상어의 작은 세계

 

장상

 

 

 

   이재민의 가장 큰 불행은 본인의 불행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때마침 재민은 공강이라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고, 그의 친구 셋도 시간이 맞았다. 재민의 친구들은 그에게 만나서 아쿠아리움에 가자고 연락을 했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도 재민은 요를 개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신이 정말로 불행한 게 맞는 것인지를 곱씹는 중이었다. 재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곧 외출할 채비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재민은 외출하기를 꺼렸는데, 집을 나서기만 하면 문밖에서 재민을 기다리던 근심이 득달같이 그의 어깨 위를 올라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에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재민은 열대어들이 몹시 보고 싶어져 친구들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는 물고기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오늘처럼 평소보다 저렴하게 입장권을 끊을 수 있다면 비용 걱정도 덜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재민은 바깥세상이 그에게 내뿜을 압도적인 불안감을 무릅쓰고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반가웠던 것도 잠시 재민은 금세 친구들의 쾌활함에 질려 외출한 것을 슬쩍 후회했다. 친구들은 재민이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자 신이 난 듯했지만 재민은 친구들 때문에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까지도 위염을 앓은 탓에 수척해진 재민과 달리 그의 친구들은 사람들이 흔히 ‘대학생’ 하면 떠올리는, 어중간하게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을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아쿠아리움 근처에서 저렴한 돈가스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친구들은 재민에게 이번 여름방학에는 푸켓에 가자고 졸랐다. 재민은 해외여행을 갈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듭 거절하는데도 친구들은 그에게 대체 언제까지 집에만 처박혀 지낼 거냐며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고 그를 재촉했다.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한 한 마디를 궁리하면 될 것을 재민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씨발, 나는 돈이 없어, 여기도 지금 정말 큰맘 먹고 나온 거라고, 라며 소리치고 싶은 짜증을 억누르기에 앞서 그는 또다시 만성 방광염의 증상이 나타나는 걸 느꼈다. 재민은 근처에 갈 만한 화장실이 있는지, 아니면 꾹 참았다 나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버틸 만한지 재는 데 정신이 팔리기 시작했고, 어딘가 불안한 것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친구 하나가 재민에게 요즘 들어 유독 그가 불안해 보인다며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재민은 고개를 한번 대충 끄덕이고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불안 속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자기연민을 저절로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민은 자신이 이처럼 엉망이 된 이유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얼핏 봤을 때 확실히 재민은 불행하다고 하기엔 썩 괜찮아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가족들도 모두 건강했다. 부모님은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고 단 한 번도 재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작은 조약돌에 눈코입을 오밀조밀하게 새긴 듯한 생김새의 재민은 호감 가는 인상의 학생이었으며,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일류대라 부르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누구든 재민을 만나면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자란 부잣집 외동딸로 생각했다. 그것이 재민이 불행함에도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재민은 남들이 보기에 팔자가 좋아 보인다면 불행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생활을 영위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런 생활은 이미 재민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면서 끝나버렸다. 재민의 가족은 재민이 졸업한 고등학교 인근의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불행의 시작은 급작스러운 듯 급작스럽지 않았다. 재난이 일어나기 전 쥐 떼가 이동하고 물고기들이 마구 첨벙거리는 것처럼, 재민의 불행 역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심상치 않게 징조를 보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돈 걱정을 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가끔 절절매면서 전화를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실에 놓여 있던 최신형 컴퓨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빠, 우리 컴퓨터는 어디로 가고 웬 고물이 여기에 있어?"

 

   재민이 컴퓨터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낡은 노트북을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그 컴퓨터를 잠시 아는 사람에게 빌려주었다고 대충 둘러대었다. 컴퓨터가 상용화된 요즘 같은 시대에 남의 집 컴퓨터를 빌려 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에 아직 철없었던 재민은 그 얼토당토않은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 도대체 언제면 그 컴퓨터를 돌려받냐며 칭얼댈 때도 있었다. 컴퓨터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그제야 재민은 집안 상황이 어딘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재민이 그 사실을 깨닫고 조금 풀이 죽었을 무렵 그의 가족은 집을 옮기게 되었다. 부모님은 이사할 집은 이곳보다 좁을 거라고 하면서 집에 있는 물건 대부분을 가져다 팔았다. 아늑했던 집이 점차 황량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새집을 처음 마주했던 날 드디어 불행은 가면을 벗고 그 숨 막히는 실체를 재민에게 드러내 보였다.

 

   아무리 더 좁은 집에 간다 하더라도 재민은 내심 난생처음 해보는 이사에 들떠 있었다. 태어난 이래로 쭉 살아온 동네는 이제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상상했다. 더는 새벽같이 일어나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통학할 필요도 없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만 이동하면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것은 왠지 낭만적일 것만 같았다. 재민의 학교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담한 주택가들도 떠올렸다. 그런 집들은 비록 재민 가족이 사는 아파트보다는 좁고 낡았어도 훨씬 정겨워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집으로 옮기게 되나보다고 재민은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그 탓에 이사하던 날 재민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자습 시간에도 공부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재민은 결국 빨리 집을 구경하고픈 마음에 두통이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야간자율 학습이 시작되기 전 조퇴를 했다. 재민은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지하철을 타고 새 동네에 도착했다. 재민을 마중 나온 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어느 중식당에 갔다. 식당의 해물볶음밥은 무척 맛있었다. 재민은 새 동네가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재민과 달리 부모님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웃으면서도 우는 것처럼 보였다. 식당에서 나와 새집을 마주했을 때 아버지는 현관문을 열기 전 재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집이……, 많이 작을 거야. 그래도 아주 잠깐만 머무를 곳이긴 하니까."

 

  그 말을 하는 아버지는 식은땀을 흘리지 않고 있을 뿐이지 좌불안석인 사람처럼 보였다. 현관문이 열리자 재민도 그의 부모님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표정을 절로 짓게 되었다.

 

   새집은 오래전 살았던 아파트 안방 4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단칸방이었다.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감명하기가 무섭게 자기 방을 잃었다는 생각에 재민은 헛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는 안락해 보인다면서 부모님에게 애써 새집에 대한 감상을 표했다. 화장실을 제외한 공간은 거실이자 서재이자 부엌이자 안방이자 재민의 방이 되었다. 재민이 등교하기 위해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데까지는 단 다섯 걸음이면 충분했다. 집에는 자연스레 비밀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비밀을 만들려 해도 은밀한 공간 따위 존재하지 않으니 만들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는 한걸음에 책상으로 가 공부를 할 때면 부모님이 돈과 관련된 온갖 걱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민은 부모님이 자신 앞에서 그런 걱정을 대놓고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그들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 일부러 헤드폰을 썼다. 그러면 부모님은 재민이 음악을 듣는 줄로 알고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재민은 그런 식으로 부모님에게 비밀 아닌 비밀을 만들어 주면서 집안 사정을 파악하고 이번 주에 사고 싶은 소설책을 사러 서점에 가도 될지, 혹은 바지 한 벌 새로 사 달라고 엄마에게 졸라도 될지를 가늠했다. 재민의 가족은 그 누구에게도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눈치를 살피고, 아는 사람들에게 무심결에 새 동네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재민의 행동은 점차 조심스럽게 변했다. 그 조심성은 훗날 재민이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단칸방은 반지하도 아니면서 햇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언제나 우중충했다. 희한하게도 그 햇빛 한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재민의 소설책들은 모두 표지 색이 바래서 미운 색깔로 변했다. 비가 올 때는 빗방울이 천장 한구석에 달린 작은 창가를 세게 때려 구슬픈 소리를 내었다. 집은 좁아터졌으면서도 벌레가 많았다. 책장과 옷장 뒤쪽으로 작은 거미들이 집을 짓는 바람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거미가 몸에 달라붙어 있을까 봐 몸을 털어내야 했다. 옷을 벗어 바닥에 팽개쳐두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여름이 되자 집은 끔찍하게 습해져서 금세 곰팡이 소굴이 되었다. 곰팡이가 사는 집에 재민의 가족이 피어난 것 같았다. 재민이 사랑해 마지않는 소설책들에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좁쌀만 한 벌레들이 종이 위를 기어다녔다. 가장 아끼는 책 다섯 권이 벌레에 먹히고 나서야 재민은 아직 멀쩡한 상태의 책 몇 권을 학교 사물함에다 보관하기 시작했다. 집에 꼭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겨울이 되자 재민의 책상 밑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수험생이었을 때 재민은 손발이 꽁꽁 얼어가면서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이 꼭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19세기의 고뇌하는 가난한 대학생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상은 나름 매력적이어서 재민의 괴로운 생활에 한 줄기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재민은 아직 낙천적인 성격을 잃지 않았다. 갑작스레 변한 생활에 이따금 터져나오는 울분도 그렇게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재민은 성녀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지 세상만사에 달관한 현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고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자 재민은 평소보다 많이 초조해졌다. 마음이 불안정해지자 자신의 불행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동네 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쳤고 아버지는 노동청을 들락거렸다. 어중간 나이였던 탓에 아버지가 그럴듯한 직장에 다시 취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단기적으로나마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노동일을 했다. 저녁에 집에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며 술 한잔하기를 즐겼던 아버지는 이제 집에 돌아오고 나면 너무 지쳐 곧바로 잠들기 일쑤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가 실직한 지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아버지의 예전 직장 동료가 새로 차린 회사에 아버지를 영입했다. 아버지는 다시 넥타이를 맬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그 직장도 부모님의 사업처럼 또다른 불안정한 사업에 지나지 않았다.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차림새가 다시 멀끔해지기는 했으나 재민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가난의 위력이 어찌나 굉장한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돈을 버는 일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도 예전과 같은 느긋한 활기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 나이의 다른 어른들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어 원하는 만큼 여유를 누리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전히 기약 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재민은 서글펐다.

 

   재민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길 원했던 자신이 그렇게 동정하던 사람들의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세상에 차고 넘친 못된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왜 그동안 착하게 살아온 자신은, 그리고 남에게 해를 끼친 적 없는 자신의 가족은 이렇게 다 무너져가는 오막살이에 살며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민은 그 누구도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 않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고생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안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억울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멀쩡해 보이고픈 욕망과 위로받고픈 욕망이 충돌하면서 재민은 차츰 원래의 쾌활함을 잃어갔다. 재민은 부모님의 사업이 그랬듯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이 점차 커지면서 일상에서조차 재민을 괴롭혔다.

 

   괴로움이 더해질수록 재민은 안락했던 과거를 그리워했다. 방 세 칸에 베란다에다가는 어머니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었던 아파트로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자신의 내면에 이토록 어두운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던 시절, 세상에 이처럼 초라한 공간과 초라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이 그리웠다. 아버지는 회사 사람들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올 수 있던 시절. 그때는 기념일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가용을 타고 가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낡았어도 아끼는 물건들을 모두 팔아 버려야 할 필요도, 좋아하는 소설책이 좀먹힐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가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재민이 정말로 불행할 이유가 없이 많은 걸 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기만 해도 재민은 옛날 생각이 가슴을 후비는 것만 같아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바쁠 때가 아니면 재민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의 처지가 너무나도 아득해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굴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단칸방에 이사를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재민은 혼자 넋두리나 할 겸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가끔 답답할 때면 비공개로 해두고 이것저것 끼적일 생각이었다. 재민은 고민 끝에 필명을‘블랑쉬’로 정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름을 딴 것이었다. 재민의 상태는 이제는 몰락했음에도 찬란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언어유희로 자신의 본명 ‘이재민(李材旻)’을 바꿔 ‘이재민(罹災民)’이라는 필명을 쓸지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았다. 기왕이면 영화 속 아름다운 비비안 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었다. 비비안 리가 연기한 블랑쉬는 미친 사람처럼 굴어도 우아해 보이기는 했으니까. 아직 재민에게는 상상력이라는 힘이 남아 있었다. 블랑쉬라는 필명을 블로그 프로필에 적는 순간 재민은 어쩌면 이렇게나마 지금을 잊고 우아한 삶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겨운 현실을 잊어보려 하면서도 재민은 그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했다. 재민은 자신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모님이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 역시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민은 일주일에 두 번씩 고등학생 두 명을 대상으로 영어 과외를 해주면서 돈을 벌었는데, 성적 장학금을 타기 위해 공부를 병행하면서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재민의 집 소득분위가 어중간하게 나온 탓에 국가장학재단에서는 등록금 일부만을 대주었다. 그래서 교내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 등록금 전액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운이 좋을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매 학기 수석이나 차석 자리를 꿰차는 건 힘들었다. 삐끗해서 장학금 조회를 했을 때‘우수’가 뜨지 않으면 재민은 온몸이 졸아붙는 듯한 절망감을 맛봤다. 부모님이 아무리 성적에 너무 목매달 필요는 없다고 달래봐도 재민은 죄책감을 느꼈고 스스로를 무능하게 여겼다. 조금이라도 집을 위태롭게 만들면 안 된다는 강박과 과거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그리움은 재민을 불안에 빠지게 했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로 자신이 팔자 좋은 것 모르고 불행하다 느끼는 것일지라도 모르는 생각 역시 불안을 유발했다. 아무리 가난하다 할지라도 재민은 명문 고등학교를 나와서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공부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들도 여전히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만큼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사실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답답함을 털어놓는다면 배부른 소리 한다면서 욕을 먹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가난하면서도 무조건 내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아쉬움 없게 해 주겠다고 하시잖아.

 

   재민 본인조차 자신이 소위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몰랐다. 흙수저 같으면서도 금수저 같은 교육을 받은 자신이 정말로 불행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난은 깡마른 요괴의 모습을 했을 것만 같았지만 뜻밖에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모습이었기에 더욱 재민을 무시무시하게 압도했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굶주린 아이나 소 열두 마리 값으로 늙은 사내의 아내로 팔려가는 소녀의 모습만이 가난은 아니라는 것을 단칸방에 오고 나서야 재민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재민은 어찌 되었건 부모가 모두 일을 하고 조촐하게나마 세 끼를 꼬박 차려 먹고 잠잘 공간에 산다는 것은, 그리고 고등교육도 받고 있다는 것은, 기아나 난민, 가정폭력범의 가족들만큼 불행한 것은 아니잖냐고 생각했다. 재민은 분명 그들보다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민의 친구들이 말하는 청춘이란 것을 한껏 누리기에 그는 여유가 없었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놀러 나가기도 힘들었고 연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모두가 대학생의 낭만을 즐기는 동안에 그는 오직 하루빨리 이 가난과 이 확신할 수 없는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며 생활했다. 그러느라 하루하루에 지쳐 즐거움이 무엇인가조차도 까맣게 잊게 되고 말았다.

 

   즐거움을 잊은 상태에서는 혐오스러운 것들이 더욱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재민은 멀쩡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이 좁아터졌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은근히 얄밉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 공지를 하는 담임에게 그런 걸 받을 애가 여기 어딨냐며 철없이 외쳤던 아이를 아주 미워했다. 그래도 그때는 다들 아직은 어리니까,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그런 것들을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아마도 사람들이 성숙하게 생각할 줄 알 것이라고 믿었다. 장성한 어른인데도 기초생활수당을 받으러 온 어머니에게 보아하니 잘 배운 사람 같은데 왜 이런 거나 받고 앉았냐고 노골적으로 묻던 공무원은, 그저 그냥 유별나게 못된 것이라고 믿었다.

 

 

     - 나도 고생했어. 내가 왜 조금도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한테 돈을 줘야 해? 우리도 고생해서 돈 번 거야.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괜히 나온 줄 앎? 가난뱅이 새끼들은 조금도 도와주면 안됨 왜냐면 지들이 그 돈 받는 게 당연한 줄 알고 받아처먹기만 하거든ㅋㅋㅋㅋㅋㅋㅋ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우연히 그 인기글과 댓글들을 보니 마음이 절로 착잡해졌다. 200여 명의 학생이 재민의 가족을 무능하고 게으르다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평범한 학우들이 그런 글을 쓰고 그런 글에 추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성희롱성 글을 비롯해 온갖 혐오를 담은 글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멀쩡한 낯으로 음침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재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 보기엔 멀쩡한 재민이 저도 모르는 사이 멸시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힘든 사람을 조금도 이해할 생각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그들을 도와야 하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난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재민이 애써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의 불행을 이해하고 포용해줄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재민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면 재민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질 것이 분명했다. 재민은 가난이라는 것이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부러워하는 기이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발명된 이래 가난은 늘 그런 기이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동화가 어린아이들에게 가난하더라도 착하게 살면 결국은 복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 가난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감동했고,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속 우아한 비련의 여주인공을 보며 낭만을 느꼈다. 사람들에게 가난은 선한 삶을 살 기회이자 눈물 나게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사실 단칸방에서 공부하며 가난한 유학생 흉내를 내던 고등학생 시절의 재민도 따지고 보면 아직 가난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놓지 못했던 것 아닌가!) 자아 성찰에 빠져 멋들어진 모습을 보이기에도 적격이었다. 그 누구도 가난을 부러워한다고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은밀한 방식으로 미화를 하며 가난에 대한 그들의 환상을 표출했다.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도 세금이 너무 많이 나가고 장학금은 가난한 아이들이 죄 가져간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부류였다. 재민이 보기에 그들은 오히려 과시이자 저가 가진 권력을 ‘착취당해’ 불행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정작 너희가 정말로 가난해지면 그런 낭만을 느낄 수나 있을 것 같아? 아끼던 것들을 한꺼번에 떠나보내야 할 거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네가 힘들다는 말은 절대로 지금처럼 대놓고 하지도 못하겠지. 다른 사람들이 너를 이상하다고, 불쌍하다고, 아니면 괜히 죄책감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쳐다보기를 원치 않게 될 테니까. 정말로 힘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너희들 때문에 계속 입 닥치고 지내며 점점 더 힘을 잃어가겠지. 너희가 가난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미워할수록 너희는 더 가난으로부터 멀어져갈 것이고 가난에 대한 너희의 감정도 더 깊어질걸.

 

   재민은 애써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핸드폰을 내려놓고 과제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은 뒤부터 게으른 사람들, 가난뱅이 새끼 운운하며 하던 말들이 자꾸만 재민의 귓가를 때렸다. 그들이 재민에게 직접적인 비난을 한 것이 아닌데도 재민은 남들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얻어맞기까지 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뭔가 힘든 게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함부로 속단을 해…….

 

    그렇게 재민은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도 또 화가 났고, 다시 자신이 감히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면 그 글을 쓴 사람들이나 다름없는 꼴이 되고 말 것이라며 스스로 달래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점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갔다. 화를 억누르고 설움을 참으면서 산 지 이미 몇 년이 지났지만, 그날 이후로는 더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을 간신히 견디며 보냈다.

 

    너무 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극단적으로 느껴온 끝에 마침내 재민은 블랑쉬 뒤부아처럼 살짝 돌아 버렸다. 처음에는 그냥 남들보다 아주 살짝 더 매사에 초조해하는 정도였다. 어찌 보면 재민은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꼼꼼한 성격인 것처럼 보였지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불면증이 시작됐다. 눈을 감아도 백색의 따가운 빛이 눈을 찔러대고 시끄러운 환청이 귓가를 때렸다. 머리카락 뭉치가 목구멍을 꽉 막은 느낌이 들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눈을 감으면 매일같이 느끼는 울화 때문에 가슴이 쿵쾅거려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다음에는 소화불량. 이유 모를 복통을 자주 앓았다. 마지막으로 방광염이 도졌다. 방광염은 재민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길거리를 가다가 갑자기 몸속에서 조약돌이 굴러다니는 듯하기도 하고 전기로 지지는 듯하기도 한 통증을 느꼈다. 그해에는 재민이 처음으로 21학점을 들으면서 학회도 나가고 과외까지 하느라 한창 바빴던 해였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비뇨기과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재민의 소변에서 재민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병균들이 검출되었다. 약을 먹고 한동안 괜찮아지나 싶더니 이윽고 증상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세균이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수차례 병원을 가면 역시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학생, 평소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어요."

 

    의사도 원인을 알지 못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참 진단 차트를 보다가 재민에게 말했다. 재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병은 낫지 않았다. 등하교 중에 갑자기 통증을 느껴서 역내 화장실로 뛰어들어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벽 구석구석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공중 화장실은 재민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병이 계속되자 여행을 가는 게 무서워졌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러 나가도 전혀 마음이 편치 못했다. 외출할 때면 근처에 화장실이 있나 둘러보면서 다녔고 술은 절대로 마실 수 없었다. 가장 불편하지만 가장 안전한 집에 고립되어 있어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고 볼 수 있었다). 약속을 거절하면 사람들은 재민이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병세가 심각해져 어떨 때는 강의실에 들어섰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 식은땀을 흘려 대며 80분을 버틸 때도 있었다. 강박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부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니 재민은 미쳐갔다. 고통으로 인한 긴장 때문에 놔버렸던 정신이 들면 벌레가 들끓는 비좁은 집구석이 눈에 들어오고 애써 지친 티를 내려 하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집에서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에 병에 시달리지는 않는 대신 보고 싶지 않은 가난의 현장을 다시 마주해야 했기에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재민은 웅크리고 누워 눈물진 얼굴을 베갯잇에 비비며 이 끝없어 보이는 시련의 순간에 제발 끝이 있기를 기도했다. 신파극 속으로 자신의 가족을 밀어넣은 신을 더는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자신을 도와줄 리는 더더욱 없기에 자신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불행한 게 아니라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있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은 부조리하고 나는 죽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화병이 도져 가슴이 쿵쾅대느라 잠을 설쳤다.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면서 집 불평을 하고 싶다. 부모님이 기초 수당을 받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드름도 피우고 점잔도 뺄 수 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공부하느라 힘들다며 투정만 부리면 되던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다. 세상이 찬란하게만 보이던 그 시절이 이제는 왜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득하게 느껴지는 걸까…….

 

   걸핏하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화장실로 뛰어가야 하는 신세의 이재민. 카운터 직원이 한도 초과인 카드를 돌려주면 황급히 지폐를 꺼내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는 멍청한 이재민. 꽃다운 나이에 미쳐 버리거나 죽어버리기에는 세기의 반항아들만큼 강렬한 인생을 살지 못한 평범한 이재민. 내장 구석구석 염증이 도질 만큼 근심이 쌓였지만 정작 그 누구도 불행을 인정해주지 않는, 그래서 본인조차 그 불행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불쌍한 이재민. 자신의 불행이 가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가난한 사람들을 혐오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나 다름없다고 여겨 괴로워하는 이재민.

 

    버스에서 자신이 정말로 불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곱씹어 보노라면 갑자기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창문을 열고 몸을 휙 던져 버리고픈 충동이 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재민은 그걸 정말로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다. 죽고 싶은 욕구만큼 살고 싶은 욕구도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얼마나 아프기에 심장이 멎는 것일까 싶어 무서운 마음도 컸고 그 비좁은 골방에서 싸늘하게 식은 자식의 주검을 수습해야 할 부모님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재민이 살고픈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을 어떻게든 버텨내서 자신을 압도하려 드는 세상을 향해 언젠가 조롱 섞인 웃음을 날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또 고통을 견디자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고 죽어버리자니 비참한 꼴만 보다가 죽는 것이 너무 분해서 살고 싶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가 이런 상황에도 적용이 되는 건가? 그러다가 아,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지 하면서 한숨짓기를 되풀이했는데 그런 자신의 음울한 나날들을 재민은 친구들과 점심을 먹던 중 서서히 대화에서 고립되면서 떠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표를 끊고 아쿠아리움에 들어와 있었다. 재민의 친구들은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을 보면서 좋아들 했다. 오직 재민만 일행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별다른 감흥 없이 물고기들을 보고 있었다. 아까 식당에서 밥을 먹다 한 번, 밥을 먹고 나서 한 번, 아쿠아리움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총 세 번을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또 방광염 증상이 나타날 듯 말 듯싶었다. 방광염이 도질 때마다 그 병을 유발한 근심거리들도 재민의 몸을 짓뭉갰다.

 

  재민은 민물고기 전시관에서 떡납줄갱이들을 보며 자신이 건강했더라면 이곳에서 자기 친구들처럼 즐겁게 놀 수 있었을지 생각해봤다. 꼭 그렇지는 않을 듯했다. 부모님이 사업을 시작하기 3년 전, 아주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삶을 살고 있었을 적에 재민의 가족은 물고기를 키웠었다. 청계천의 수족관들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구피, 플래티, 체리 새우, 피노키오 새우, 오토싱, 네온테트라, 코리도라스 등등 온갖 열대어를 사오다가 나중에는 떡납줄갱이, 납자루, 왜몰개, 참종개 같은 민물고기 어항까지 마련했었다. 물고기들은 몇 대에 걸쳐 어항에서 살 정도로 번성했다. 그때 재민과 그의 부모님은 집에 돌아오면 종일 어항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단칸방으로 이사하기 전에 재민은 주변 사람들에게 열대어들을 모조리 나눠줬고 민물고기 어항은 동네 근처 단골 수족관 주인에게 잘 부탁한다며 맡겼다. 그렇게 작은 물고기들의 수명은 채 2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죽었을 게 확실했다. 그 사실에 재민은 또 울적해졌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건강했더라도 이곳을 그다지 즐겁게 여기진 않았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피라루쿠나 상어, 가오리 같은 물고기들을 제외하면 다른 물고기들은 이미 한창 청계천을 드나들 적에 많이 구경했던 아이들이었다 (용처럼 값비싼 물고기들도 청계천에 가면 꽤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아쿠아리움은 전혀 새롭지 않았고 시시했다. 오히려 청계천에 사는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커 보이는 듯싶기도 했다. 게다가 이곳의 물고기들은 생각보다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놈들은 볼 때마다 활기를 불어넣어 줬는데, 여기 있는 물고기들은 동물원의 동물들만큼 슬퍼 보였다. 몇 년 전부터 동물원을 동물 학대의 현장으로 여기고 발길을 끊었던 재민은 그래도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은 괴롭지 않을 테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생각이다 싶지만, 그때는 물고기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니 사시미 회 뜨듯 괴롭히지만 않으면 다른 동물들만큼 심리적인 고통을 느끼진 않으리라고 믿었다. 어릴 때 기억에도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은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해보니 이곳에 사는 물고기들은 카리브해나 아마존처럼 드넓은 곳에서 끌려와 재민이 거주하는 집 정도 되는 크기의 어항에 갇혀 답답해 보였다.

 

  오히려 저 수족관만 한 집에 사는 인간인 내가 더 불쌍한 건가?

 

  재민은 이번에도 자신이 불행해도 괜찮은 사람인가를 따져 보았다. 그러면서 몇 번 친구들을 따라 어설프게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고 와 되게 귀엽다, 와 스쿠버다이빙 너무 해 보고 싶다, 등등 영혼 없는 감탄을 몇 마디 내뱉었다. 그러고는 전기뱀장어를 보면서 속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좁고 물도 얕은 곳에 살아서 답답하지? 나는 널 이해할 수 있어. 나도 골방에 갇혀 살거든. 자기만의 방에서 잘 수 있고 본능적인 생존의 걱정만 가끔 좀 하면서 넓은 세상을 느긋하게 느껴도 보면 좋은데, 나는 너의 수족관만큼 작은 집에서 가족과 부대끼며 살고 매일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단다. 어쩌면 너는 적어도 이곳에서 헤엄만 치면 될 테니 나보다는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우리 가족이 결국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을지, 남들이 나를 더러운 사람 취급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하느라 너무 힘들어. 아니다, 그래도 내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나름의 불행을 겪듯이 너도 네 나름의 불행이 있겠지. 불행은 우열을 가리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나쁜 것을 두고 내가 더 잘났네 아니네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난 굳이 너를 깎아내리는 대신 네 슬픔을 존중해 줄게.

 

   그 전기뱀장어가 전기라도 보낸 듯이 찌릿하면서 몸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서 재민은 저도 모르게 헉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그래도 어떻게든 대충 보고 빨리 나와서 화장실을 가야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방광염이 너무 심해져서 지금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방광염의 증상 중 하나가 잔뇨감만 있고 정작 소변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민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실상 0%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불안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 재민은 친구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기다리지 말고 구경하라고 일러둔 다음 화장실을 찾아 길을 떠났다. 마음이 급해 빨리 걷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조금이라도 걸음이 빨라지면 그 따끔거리는 고통이 심해졌기 때문에 1호선의 수상한 부랑자처럼 어기적대며 걸어야 했다. 화장실은 한참을 가서야 나왔다. 재민은 화장실 표지판을 본 순간부터는 성큼성큼 걸어서 단숨에 화장실로 들어갔다. 역시나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한참 변기 위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불안과 한 몸이 된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비참했다. 재민은 한참을 끅끅거리다가 마음을 진정시킨 뒤 티슈로 눈가를 꾹 눌렀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곧바로 벽 한 면이 통째로 수족관인 곳이 나왔다. 여러 종류의 상어들과 바다거북과 대왕가오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어릴 때 그 수족관을 보고 재민은 상어들이 유리를 부수고 나오면 어떡하냐며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는 구석에 놓인 수족관의 모양을 본뜬 모형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겁을 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안심을 시켰었다. 재민은 친구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도 모르게 수족관 가까이 다가갔다. 가끔 상어들이 근처로 가까이 다가오면 하나같이 주둥이가 뭉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제 앞을 유리가 가로막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가갔다가 부딪혀서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큰 수족관이라지만 바다와 비교하면 상어에게는 턱없이 작은 세계였다. 오늘따라 그 뭉그러진 주둥이가 더더욱 슬퍼 보여서 재민은 또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시끄럽게 흐느끼지 않고 조용히 눈물만 뚝뚝 흘렸다. 몇몇 상어들은 날 때부터 수족관에서 살았지만, 바닷가에서 이곳으로 끌려온 상어들도 상당수 있었다. 재민은 그 상어들이 아마도 자신처럼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믿었다. 문득 오래전 영어 교과서에서 봤던 영국의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이 재민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실제 상어의 박제를 수족관에 넣어 모터로 움직이게 한 기괴한 예술품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재민은 (그때는 아직 모든 불행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지문에 나온 그 작품의 제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는 한참 동안 구글에 나온 작품의 모습을 감상했다. 상어의 모습은 어딘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이미 죽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지만, 모터로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나는 아직 물고기들의 왕이야 내가 죽었을 리 없어 라고 말하며 버둥대는 것처럼 보였다. 재민은 죽고도 움직이는 그 상어나 수족관에 갇힌 상어나 현재를 받아들이길 힘겨워하는 자신이나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 상어들은 한때 바다에서 제일가는 녀석들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세상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황급히 몸을 피하는 조무래기 물고기들이 가소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가끔 걱정이 생겨봤자 누구나 하는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걱정이었을 테고 세상이 제법 살만한 곳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비좁은 곳에 갇혔을 것이고 더는 저가 사는 곳이 예전의 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몇 번이고 더 멀리 나아가려다 유리벽에 주둥이를 찧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서 청량한 푸른빛의 바다는 점점 희미해져 이제는 그런 곳에 살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미치도록 그리우면서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슬플 것이고, 그 좁은 수족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져서 막막할 것이다. 슬픔이 깊어질수록 입가의 상처도 아무는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어는 그 슬픔을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상어이지 않냐고, 이 수족관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냐고 하면서. 재민은 눈가를 훔치고는 다시 상어를 보는 데 골몰했다.

 

   그때였다. 주둥이를 가장 심하게 다친 상어와 재민의 눈이 마주쳤다. 재민의 가슴이 점점 크게 뛰었다. 그는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닥쳐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구원의 순간은 시련의 시작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상어는 천천히 재민에게 다가오더니, 뒤를 돌아서 멀리 사라졌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전속력으로 재민을 향해 돌진했다. 두꺼운 유리가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났다. 상어는 물 바깥으로 나와 숨을 헐떡거리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재민의 목덜미를 꽉 물고 매달렸다. 재민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체를 해서 손가락을 땄을 때 나올 법한 아주 시커먼 피였다. 재민은 그때 눈물범벅이기는 했지만 웃고 있었다. 그가 그처럼 해맑게 웃는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장상 |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 이상의 팬이 되면서 <월간 권태>를 처음으로 구상했습니다. 덕업일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그걸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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