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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마틴 클럽 월간 마틴 클럽 (월간권태 편집장들의 말말말★) 월간 권태 2호의 가장 마지막 글 (특집으로 실린 글이었지만 꽤나 흥미롭기 때문에 홈페이지에도 올리기로 결정했다) ‘세 명이 모여서 잡지를 만들고, 심지어 두 권이나 내다니, 필시 저 셋은 어렸을 때부터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운명적인 공동체임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실 누군가를 위해 말씀드리자면, 월간 권태 클럽은 정말 ‘월간 권태’ 잡지 발행을 목적으로 2020년도에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비교적 최신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0년도 이들의 모임들을 분석해보면 전부 ‘월간 권태’의 발행을 안건으로 회의하고 또 회의했고, 심지어 술 마시는 자리에서도 이들은 작품과 잡지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했다. 접점도 별로 없어 보이고, 친목질도 별로 하.. 2021. 9. 16.
축구공의 무덤 축구공의 무덤 김수빈 1. 분명히 황민희는 투시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 아까 세시 반 쯤. 청소시간. 갑자기 소각장 있는 대로 나를 부르더니, 잠자코 서서 그 애는 몇 분 째 계속해서 내 손을 쳐다보던 중이었다. 분명 양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어찌나 그 주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던지, 얘가 지금 투시를 해서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쥔 내 손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약간 무서웠다. 혹시 모르니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쥐고 있다가 가운데 손가락, 그러니까 세 번째 손가락만 치켜세우고는 민희의 표정을 관찰했다. 진짜 투시를 하는 건가? 민희의 눈썹이 잠깐 꿈틀거리더니 이제는 내 얼굴을 쳐다본다. 갑자기 긴장이 되어서 손에는 땀이 가득 찬다. 뭐, 뭐 어쩔 건데. 내가 내 손가락 내 주머니에서 피겠다.. 2021. 9. 16.
따릉이(2020.4.30)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은 여러 개지만, 삶은 연예 일간지처럼 미심쩍은 것과 단점 사이의 애매모호한 것만 부풀리는 경향이 있어, 어쩌면 잊고 지낸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은 흔히 발걸음에 채는 곳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대도시가 제공하는 가장 작은 장점으로 ‘둔갑하고 있는’ 공공 자전거가 사실은 아주 작지만 값비싼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서울시 외의 곳에도 공공 자전거는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따릉이가 그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고 딴지를 걸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자원은 그 희소성과 유용성에 따라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자명하나 그 희소성은 꼭 유일함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공공 자전거가 있는 다른 도시의 주민들이 이 글에서의 따릉이를 통.. 2021. 7. 20.
월간 권태 2호 비하인드 -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월간 권태 2호를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을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2020년 상반기의 심정은 딱 이것이었다. 대학 4학년이 되었다. 휴학 한 번, 교환학생 한 번 없이 꾸역꾸역 쉼표 없이 달려온 결과였다. 왜 한 번도 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할 것이다.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고, 지역에서 공부로는 한 가닥 했다는 학생들만 모인 특수목적고에서 경쟁하고, 수능을 두 차례나 치렀다. 마지막으로 쉬었던 건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누워서 지냈던 그해 겨울이었다.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있어도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고서 드디어 대학에 입학했고, 경주는 그때 다시 시작해서 끝나지 않았다. 경쟁과 승부사의 연속이었던 학생.. 2021. 3. 18.
첫 번째 권태인: 프랑수아즈 사강 - 전여운 이달의 권태인: 프랑수아즈 사강 전여운 창간호의, ‘이달의 권태인’ 칼럼을 맡는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감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는 팀과의 논의에도, ‘권태인’이라는 호칭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기저에는 권태를 체험하지 못해 본 것은 아니나,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권태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이해는 얻지 못했다는 자각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권태인’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권태’라는 개념을 개인의 언어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권태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다. 이 거시적인 정의는 다소 모호하게 다가왔는데, 그것은 권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작용보다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작용점에 주.. 2020. 8. 30.
독사 (獨死) 독사 (獨死) 이겨레 ※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자살에 대한 언급 및 묘사가 나옵니다.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여자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보고 있는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로, 여자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림이었다. 여자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본 그림인데도 여자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돌아가 그 그림을 한번 더 보고는 전시관에서 나왔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 여자의 표정은 긴장되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느긋해 보였다. 여자는 오늘 하루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감이 좋았다. 여자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언제나 자신이 생각해 놓은대로 하루를 보냈다.. 202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