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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

소화의 과정 소화의 과정 김수빈 1. 지독한 악몽이었다. 잊어버릴 때 즈음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찾아왔다가, 그렇게 시달리고 나고 깨면, 다시 그 꿈을 꿀 때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분 나쁜 미묘함에 잠시 머리를 짚고 있다 보면, 곧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울린다.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끄면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고, 곧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악몽의 후유증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이 기분 나쁜 꿈보다 현실이 더 악질일 수는 있겠지만. 씻으러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본다. 3월 29일, 아침 6시 반이다. 딱히 기억나는 일정이라곤 없는, 특별할 거 없는 하루, 늘 그랬던 것처럼. 왠지 모르게 몸이 시원찮다. 기지개를 쭉 피며 방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 그 찰나, 누.. 2020. 5. 29.
상어의 작은 세계 상어의 작은 세계 장상 이재민의 가장 큰 불행은 본인의 불행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때마침 재민은 공강이라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고, 그의 친구 셋도 시간이 맞았다. 재민의 친구들은 그에게 만나서 아쿠아리움에 가자고 연락을 했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도 재민은 요를 개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신이 정말로 불행한 게 맞는 것인지를 곱씹는 중이었다. 재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곧 외출할 채비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재민은 외출하기를 꺼렸는데, 집을 나서기만 하면 문밖에서 재민을 기다리던 근심이 득달같이 그의 어깨 위를 올라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에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재민은 열대어들이 몹시 보고 싶어져 친구들을 뿌리.. 2020.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