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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83

첫 번째 권태인: 프랑수아즈 사강 - 전여운 이달의 권태인: 프랑수아즈 사강 전여운 창간호의, ‘이달의 권태인’ 칼럼을 맡는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감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는 팀과의 논의에도, ‘권태인’이라는 호칭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기저에는 권태를 체험하지 못해 본 것은 아니나,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권태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이해는 얻지 못했다는 자각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권태인’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권태’라는 개념을 개인의 언어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권태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다. 이 거시적인 정의는 다소 모호하게 다가왔는데, 그것은 권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작용보다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작용점에 주.. 2020. 8. 30.
독사 (獨死) 독사 (獨死) 이겨레 ※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자살에 대한 언급 및 묘사가 나옵니다.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여자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보고 있는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로, 여자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림이었다. 여자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본 그림인데도 여자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돌아가 그 그림을 한번 더 보고는 전시관에서 나왔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 여자의 표정은 긴장되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느긋해 보였다. 여자는 오늘 하루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감이 좋았다. 여자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언제나 자신이 생각해 놓은대로 하루를 보냈다.. 2020. 8. 29.
님이의 창문 밖에서 님이의 창문 밖에서 전여운 1. 님이를 처음 만난 그해 여름의 난 어땠을까. 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다. 난 사내애처럼 머리를 자른 깡마른 계집애였고, 그런 이질적인 외모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분홍색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채 인형이나 옷 입히기 스티커 따위를 좋아하던 동네 계집애들은 말수가 적고 겉보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나를 슬슬 피했다. 비비탄총과 디지몬 게임기를 들고 나다니던 사내애들 역시 날 놀이에 끼워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난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 까지도 변변한 친구가 하나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왜 집에 가지 않았는지 묻는다면 그 시기, 내가 초등학교에 딸린 유치원을 다니다가 그 초등학교에 입학해 삼 학년.. 2020. 8. 29.